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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프로축구 40년 베스트11] ⑨최강희-'찰거머리 수비'로 늦깎이 성공시대 드라마

최강희(64) 전 전북 현대 감독은 요즘 축구팬 대부분에게 ‘봉동 이장’ ‘강희대제’ 같은 수식어를 달고 다닌 K리그 명지도자로 각인돼 있다. 그 이전에 그는 대기만성의 아이콘이자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였다. 선수 시절 최강희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앞세워 성실하고 단단한 플레이를 하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였다. 그의 수비는 강인했고, 찰거머리처럼 상대 공격수에게 달라붙어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우악스러운 수비가 아니었다. 플레이는 영리했다. 최강희는 동시대 스타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커리어가 좀 독특했다. 선수 시절 그의 축구 인생 이야기만으로도 어떤 명승부 못지않은 재미를 줄 정도다. 최강희는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좋아하고 만화를 잘 그리는 재주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형의 학업 성적이 워낙 좋아 집에서는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 셋째 아들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최강희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 최강희의 본격적인 축구 인생이 시작됐다. 용두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선수를 시작했지만, 이어 진학한 대광중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다. 사실상 중학교 시절 3년은 공백이었다. 가족은 축구 선수의 길을 크게 반대했지만, 최강희는 결국 자신의 고집대로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로 진학했다보통 성공한 축구 선수들은 고등학교 시절 성장의 계기를 거쳐 큰 무대로 도약하거나 하는 스토리가 있지만, 최강희는 반대였다. 그는 고교 시절에도 굴곡을 겪었다.최강희는 한양공고 축구부에서 주전 자리를 잡기가 힘들게 되자 우신고 창단 멤버로 옮겼다. 하지만 주전이 되고도 그는 성실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불량 학생 쪽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최강희는 “고등학교 때 학교보다 당구장에서 더 많이 머물렀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싸움도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여기에 불운까지 겹쳐 학교가 부정선수 문제에 휘말리면서 최강희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그리고 1979년 실업팀 한일은행에 입단하게 된다. 최강희는 입단 1년 만에 군 복무를 선택했다. 제대 후 한일은행에 돌아온 그는 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인생 지도자’ 김호 감독을 만났다. 김호 감독은 최강희의 포지션을 바꿔 수비수로 만들었다. 이전까지 미드필더 혹은 공격수로도 뛰었던 최강희의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해서 측면 수비수를 맡긴 것이다. 그리고 이후 최강희는 1983년 팀을 실업 최강 자리에 올려놓고 드디어 프로팀인 현대로 이적한다. 최강희는 실업팀과 프로팀이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랐다고 회상했다. 당시 실업팀 선수들은 짧은 선수 생활을 하고 해당 회사에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팀 분위기는 축구 선수로서 자신을 단련하기보다 선수 생활을 즐기자며 잦은 회식과 술자리가 이어지는 쪽이었다. 그러나 현대 입단 후 팀 성적과 개인 기량 향상을 우선하는 분위기 속에서 최강희도 달라졌다. 그의 축구인생 또 한번의 결정적인 ‘각성’ 계기는 결혼,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서였다. 최강희는 1986년 결혼했다. 이듬해 딸이 태어난 후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그는 2007년 대한축구협회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처음 프로에 갔을 때는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도 하고, 담배도 피웠다. 하지만 결혼하고, 또 딸이 태어난 후 완전히 바뀌었다. 매일 운동했다. 훈련이 즐겁고 경기가 즐거웠다. 휴가를 받아도 이틀 이상 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스물여덟 살 이전의 나를 알던 사람과 그 이후에 나를 알게 된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최강희는 프로축구의 초기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꼼꼼하게 남겼다. 1986년 현대가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최강희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1985년, 86년, 88년까지 세 차례 베스트11 수비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1985년과 88년에는 모범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7년 28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서른살 즈음이면 대부분 은퇴를 고민했던 시절에 늦깎이 성공시대를 열었다. 최강희는 다른 선수들이 은퇴할 나이에 기량을 꽃피워 대표 선수로 자리를 잡아 올림픽, 월드컵에 출전했다. 자기관리를 잘하면 몸이 달라지고, 오래 선수로 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걸 직접 체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신감에 가득 차있을 때 나이 많은 선수는 전력 외 취급하는 팀 분위기에 밀려 1992년 은퇴했다. 최강희의 이러한 독특한 선수 이력은 그가 감독이 된 후 제자가 뒤늦게 다시 꽃을 피우는데 기여한 원인일지 모른다. 그는 전북 현대 감독 시절 이동국, 최태욱, 조재진, 김상식 등 한때 스타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지만 잦은 부상 등으로 기량이 떨어진 선수들을 영입해 전성기 기량을 다시 보여주게 만드는 ‘재활 공장장’이었다. 그 비결에 대해 최강희는 “선수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그 자신이 선수 시절 누구보다 굴곡이 많은 커리어를 걸었고,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지만 늦게 꽃을 피웠다. 그가 “팀에서는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주전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가 있던 선수들을 부활시키는 능력을 보여줬다. 명감독 최강희의 비밀은 선수 최강희가 걸어왔던 입지전적인 과정을 보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이은경 기자 2023.04.0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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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도 못한 '더블' 일궈낸 모라이스, 다음은 최초의 '트레블'

전북 현대의 황금기를 이끈 '강희대제' 최강희 감독이 떠났지만 전북의 황금기는 계속됐다. 지난 시즌부터 전북 지휘봉을 잡은 호세 모라이스 감독이 2년 만에 전북의 새역사를 썼다. 전북은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20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울산 현대와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뒀다. 전반 3분 울산 주니오에 선제 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7분과 25분 이승기가 연속 골을 터뜨리며 경기를 뒤집었다. 지난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전북은 2차전 승리를 거머쥐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최강의 팀이라 불렸지만 유독 FA컵과 인연이 없었던 전북은 2005년 우승 후 15년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네 번째(2000·2003·2005·2020) FA컵 우승으로 수원 삼성(5회)에 이어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역대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새역사. 구단 최초로 K리그와 FA컵을 동시에 품은 '더블'을 달성했다. 최강희 감독도 해내지 못한 값진 기록이다. K리그에서는 2013년 포항에 이어 두 번째다. 모라이스 감독의 2년 차. 환희와 아쉬움이 공존했다. 모라이스 감독 부임 후 최강희 감독 시절 '닥공(닥치고 공격)'을 앞세운 폭발적 공격력은 사라졌다. 또 '절대 1강'의 모습도 희미해졌다. 울산에 거센 추격을 허용했다. 지난 시즌과 올 시즌 모두 울산에 뒤지다 막판 역전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모라이스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도 생겨났다. 최강희 감독처럼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결과로 모든 불신을 날려버렸다.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많은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이기는 축구로 전북의 정통성을 지켰다. 또 결정적인 순간,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는 전술을 펼치며 승부사의 면모를 드러냈다. 최강희 감독도 해내지 못한 '더블'을 성사시키면서 전북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최강희 감독과 컬러가 다를 뿐, 모라이스 감독의 전북도 최강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더블'을 일궈낸 모라이스 감독은 최강희 감독 뿐 아니라 K리그 역사상 단 한 번도 현실로 일어나지 않은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트레블'이다. 11월 중순부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가 재개된다. 전북은 유력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모라이스 감독이 ACL마저 정상에 오른다면 한국 축구 역사에 최초의 '트레블'이 새겨질 수 있다. '트레블'은 아시아에서도 최초의 기록이다. 전북을 넘어 K리그 역대 최고의 감독 반열에도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 경기 후 모라이스 감독은 "쉽지 않은 경기, 역전승을 거뒀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고맙다. 전북이 얼마나 위대한 팀인지 많은 이들에게 보여줬다"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트레블'에 대해서는 "ACL가기 전까지 시간이 있다.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휴식을 줄 것이다. 전북 선수들은 이기는 것을 즐거워한다. ACL에서도 그런 즐거운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겠다. 전북이 항상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하나 더 들 수 있도록 잘 준비를 하겠다"고 자신했다. 이동국은 '트레블'을 달성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이동국은 FA컵 대기명단에 깜짝 이름을 올렸고, 후반 43분 교체투입되며 전북의 우승 순간을 함께 했다. K리그와 ACL 우승을 모두 경험한 이동국은 FA컵 우승 트로피가 없었다. 이번에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개인 커리어 '트레블'에 성공했다. 정말 마지막 경기였다. 이동국은 ACL에 동행하지 않는다. MVP를 차지한 이승기는 "선수들끼리 (이)동국이 형 가는 길에 우승 트로피를 주자고 말을 했다. 동국이 형이 경기도 뛰었고, 마지막에 서로 웃으면서 우승컵을 들어 행복했다. 동국이 형이 나에게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다. 고맙다'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전주=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ongang.co.kr 2020.11.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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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주지 않는 중국 축구, 버티지 못한 강희대제

최강희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 다롄 이팡과 이별했다.다롄은 지난 1일 최 감독이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2월 다롄 지휘봉을 잡은 지 약 5개월 만이다. 최 감독은 전북 현대를 떠나 지난해 11월 톈진 취안젠 감독으로 부임하려 했으나 모기업 취안젠 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안착하지 못했다. 당시 새로운 감독을 찾던 다롄의 러브콜에 응답했다.우여곡절 끝에 중국 무대에 발을 내밀었지만 시작부터 흔들렸다. 프리 시즌 대부분을 취안젠 사태로 허비해야 했다. 다롄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마레크 함시크 등 외국인 선수들과 불화설이 터졌고, 중국 언론들의 부정적 기사가 쏟아졌다. 성적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4승5무6패·승점 17점으로 슈퍼리그 10위에 머물렀다.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자 다롄은 다급했고, 기다림을 포기했다. 결국 최 감독은 사임으로 결정을 내렸다. 후임으로 라파엘 베니테스 전 뉴캐슬 감독이 선임됐다.K리그 최고 명장, '강희대제'라 불리던 최 감독의 첫 번째 중국 무대 도전은 이렇게 끝났다. 2005년 전북 지휘봉을 잡은 뒤 K리그 총 6회 우승과 6회 감독상을 수상한 최 감독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도 2회 정상에 올랐고, 2016년에는 AFC 올해의 감독상도 품었다. FA컵 우승도 놓치지 않았다. K리그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 감독은 또 다른 도전 무대를 찾았고, 중국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도전은 아쉽게 막을 내렸다.5개월, 팀을 정상화시키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강희대제'라 할지라도 팀을 정상권으로 올리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결말은 달라질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K리그에서도 그랬다. 지방의 최약체 팀 전북을 2005년 맡고 4년 후, 전북은 K리그 절대 1강으로 변모했다. 이후 시간이 더욱 쌓이자 전북은 수도권팀을 압도하는 성적과 팬심 모두 잡은 K리그 명가로 재탄생했고,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브랜드도 대박을 쳤다. 아시아에서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중국 축구는 이런 최 감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성적과 성과만 중시하는 중국 축구 문화. 그래서 기다려 주지 못하는 현실. 최 감독은 이런 중국 문화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버틸 수 있는 힘도 없었다. 최 감독뿐 아니라 과거 중국 축구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이장수·최용수 그리고 장외룡 감독 등이 모두 그랬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다.중국 축구 문화에 쓰러졌지만 최 감독의 지도자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무수한 영광을 차지한 뒤 한 번 쓰러졌을 뿐이다. 강희대제의 새로운 도전은 곧 다시 시작된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9.07.03 06:00
축구

2016년 그 때처럼···전북, 상하이 원정서 희망 안고 돌아왔다

'2016년 그때처럼.'전북 현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마지막 우승은 2016년이다. 당시 전북은 4강에서 같은 K리그 팀인 FC 서울을 꺾고, 결승에서 중동의 강호 알아인(UAE)에 승리를 챙기며 2006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한 번 아시아 정상에 섰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강희대제' 최강희(60) 감독과 함께 K리그의 강팀으로 급성장한 전북이 ACL 무대까지 평정하면서 자타공인 부동의 '1강'으로 자리매김한 계기였다.최 감독이 떠나고, 조세 모라이스(54) 감독 체제하에 다시 한 번 아시아 정상 탈환에 나선 전북은 토너먼트 첫 경기인 16강에서 재미있는 우연에 맞닥뜨렸다. 16강 상대는 중국 슈퍼리그 '디펜딩 챔피언'인 상하이 상강인데, 원정 1차전에서 문선민(27)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1로 비겼다. 선제골로 앞서 나가다가 이비니(27)의 패스 미스로 동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승리를 놓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무승부라고 해도 원정 다득점 원칙이 적용되는 ACL에서 골을 넣고 돌아왔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차전은 안방인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르는 만큼 8강 진출의 '청신호'를 밝히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상하이는 전북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2016년, ACL 8강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도 1차전을 상하이 원정으로 치렀으며, 이번과 마찬가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0-0으로 비겼다는 점이다. 다리오 콘카·헐크 등 당시 상하이의 공격을 이끌던 외국인 선수들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골대 불운이 겹치며 전체적으로 힘겨운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린 2차전에서 무려 5골을 폭격하며 5-0 완승을 거두고 보란 듯이 4강에 진출했다. '베테랑' 이동국(40)은 3-0으로 앞서던 경기 막판에 릴레이 멀티골을 터뜨리며 상하이를 완벽하게 침몰시켰다. 2016년 ACL 우승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연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전북에는 기분 좋은 우연이 아닐 수 없다.사실 전북은 1차전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더블 스쿼드'급 선수층에도 부상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드리아노(32) 한교원(29) 등 부상으로 이탈한 기존 선수들에 더해 로페즈(29)가 폐렴, 이승기(31)가 내측 인대 파열로 원정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자원으로 이기는 법을 준비하겠다"던 모라이스 감독의 의지대로 원정에서 값진 무승부를 가져왔다. 홈 앤드 어웨이로 치르는 토너먼트에서는 2차전을 홈경기로 치르는 팀이 아무래도 유리하기 마련이다. 1차전에서 패하지 않으면 승리 확률은 더욱 치솟는다. 전북은 1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득점을 기록했으므로, 2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긴다 해도 8강에 오를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과연 전북은 2016년과 같은 팀을 상대로 1차전 원정 무승부, 2차전 홈 대승이라는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모라이스 감독은 "2016년 무승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며 "유리한 상황에서 경기를 펼치는 만큼 골을 더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전북은 오는 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상하이와 2차전 경기를 치른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tbc.co.kr 2019.06.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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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중국행' 소문에 쓴웃음 지은 최강희 "돈 때문이라고 비춰지고 있다"

"내가 중국에 간다고 하면 다들 돈 때문이라고 하겠지. 그런 게 아닌데 말예요."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최강희(59) 전북 현대 감독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조금 달랐다. 스플릿 라운드 돌입 이전에 우승을 확정지은 리그 최강팀 감독의 목소리치곤 씁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무성한 중국행 루머 때문일 것이다. 최 감독은 매년 중국행 루머에 시달려왔지만 올 시즌은 유독 그 루머가 거세고, 구체적이며 정교하다. 누가 보면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은 상황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그래서 최 감독은 15일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소설이 이미 완성이 다 된 것 아닌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중국행 가능성을 크게 부정하진 않았다. "'나 간다' 하고 가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절차도 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등을 떠민다"고 얘기한 최 감독은 "지인들도 '네가 더이상 그 팀에서 할 게 뭐있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물론 가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들 날 내쫓고 있다"며 피식 웃었다. 전북과 최 감독이 함께 한 시간이 어느덧 13년이다. A대표팀 사령탑으로 불려가 잠시 팀을 떠나있던 시기를 제외하곤 최 감독은 늘 '봉동이장'으로 살아왔다. 클럽하우스가 없어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사택에 얹혀살 때부터 시작해 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거듭난 지금까지 최 감독은 팀을 이끌고, 또 지키는 든든한 주춧돌 같은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번에 불어닥친 중국행 바람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최 감독 스스로도 중국행에 관한 질문에 명확하게 부정하지 않고 있다.중국 팀들이 제시한 어마어마한 연봉 때문은 아니다. 최 감독은 단호한 말투로 "내가 만약 중국에 간다면 돈 때문에 가는 걸로 비춰지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여기서 감독을 영원히 할 수는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한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을 이은 최 감독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어떤 식으로 하든 슬픈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 감독이 몰려있는 '막다른 골목'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순 없겠지만,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큰 역할을 한 건 분명하다.최 감독은 "울산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도 그런 농담을 했다. 양천구 50대 (조기축구)팀에서 우승해도 이것보단 더 감동적이겠다고. 썰렁하고 우승한 게 맞나 싶더라"고 K리그 사상 첫 스플릿 라운드 이전 조기 우승을 확정짓던 날의 영광을 되짚었다. 영광스러운 날이었지만 최 감독에겐 '우승'이 아닌 그저 '리그 1승' 정도의 감흥밖에 주지 못했던 셈이다.최 감독은 "2, 3위팀과 한두 경기 남겨놓고 극적으로 경쟁을 해야하는데, 지금 경남이 승점 50점을 따고 2위에 있지만 다른 팀들이 반성 많이 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너리즘이라고 할 것까진 아닌데, 일단 내가 애절해지지 않으면 선수들도 금방 안다. 동기 유발이 안되면 선수들에게도 바로 영향이 간다"는 최 감독의 고민거리는 바로 이런 부분이다.전북은 최 감독 체제 하에서 굳건히 1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리그는 나날이 하향 평준화되고, 솟구치는 A대표팀의 인기와 달리 K리그는 여전히 찬바람이 몰아친다.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할 상대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중국을 도전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최강희라는 장수는 새로운 전장을 원하는 마음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 감독을 영입하려는 중국 팀들은 경쟁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최 감독은 "대제는 무슨, 그냥 동네 이장일 뿐"이라며 손사레를 쳤지만, '강희대제' 최 감독을 간절히 원하는 팀들은 마음이 바쁘다.오래 전부터 최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상하이 선화가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 중이고 톈진 취안젠은 박충균(45) 코치를 임시 감독으로 불러들이며 최 감독과 '끈'을 잇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리그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독소조항 없이 3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 감독은 "톈진 회장이 한국 선수, 감독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나보고 감독 대행을 해달라기에 거절했는데, 어떻게 보면 볼모를 잡은 걸 수도 있고… 박 코치를 데려다놓으면 나하고 계속 교류할 테니까"라고 설명하며 "나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일단 20일 이후로 모든 것을 미뤄놓았다. 20일에 발표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강희가 없는 전북'을 상상하기란 지금도 쉽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77)이라는 거목이 사라진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겪었던 고난의 시간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다.하지만 정작 최 감독은 "독특한 사람이 와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면 된다"며 덤덤하게 답했다."축구 감독은 그런 도전 의식, 긍정적인 의식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비교되고 그런 게 어딨나"고 얘기한 최 감독은 "누가 와도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물론 최강희의 뒤를 이을 새로운 '독특한 사람'이 언제 올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다음 시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먼 훗날이 될 수도 있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tbc.co.kr 2018.10.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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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최초 셋이 합쳐 우승컵 '18개'…최강희 '영혼의 파트너' 이동국과 최철순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는 '전북 현대'의 시대다. 전북이 다시 한 번 정상에 섰다.전북은 7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펼쳐진 2018 KEB하나은행 K리그1(1부리그) 32라운드 울산 현대와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번 무승부로 전북은 남은 6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전북은 2012년 스플릿 시스템이 시작된 후 최초로 스플릿 라운드를 거치지 않고 우승을 달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전북은 2009·2011·2014·2015·2017·2018시즌까지 총 6번 정상을 차지했다. 전북 6회 우승에 절대적인 역할을 해낸 이는 단연 '강희대제' 최강희 전북 감독이다. 지방의 그저 그런 팀이었던 전북은 2005년 최 감독이 부임하면서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K리그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거듭났다. K리그 6회 우승은 K리그 통산 감독 최다 우승 신기록이다. 2위는 성남 일화(현 성남 FC)에서 각각 3회 우승을 기록한 박종환 감독(1993·1994·1995)과 고 차경복 감독(2001·2002·2003)이다. 최 감독은 6회 우승을 달성하며 2위와 격차를 2배로 벌렸다. 감독 혼자 힘으로 우승, 그것도 6회 우승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전북에는 최 감독 옆에서 최 감독의 전술에 녹아들고, 최 감독의 지도력을 뒷받침해준 '영혼의 파트너'가 존재했다. 최 감독이 6번 우승을 달성한 모든 기간을 함께한 선수, 단 2명. 이동국과 최철순이다. 이동국은 '최강희 시대'의 시작을 함께 했다. 2008년 성남에서 방출되며 한 물 간 공격수라고 '평가절하'됐던 이동국은 2009년 전북으로 이적했다. 최 감독을 만난 뒤 이동국에게는 '제2의 전성기'가 열렸다. 이동국은 이적 첫 해 21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최 감독에게 첫 번째 별을 선물했다. 자신 역시 K리그 첫 번째 우승이었다. 이후 5번의 우승에 모두 절대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동국은 K리그 통산 214골로 역대 1위다. 이 중 전북에서 148골을 성공시켰다. 전북에서 10시즌을 뛰고 있는 이동국은 매 시즌 10골 이상을 신고했다. 올 시즌 역시 조커로 투입됐지만 12골을 넣으며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9년 K리그 MVP에 등극한 뒤 2011·2014·2015 3번을 더 수상했다. 이동국은 최 감독 곁에서 K리그 '전설'로 올라섰다. '원 클럽 맨' 최철순 역시 6회 우승 신화에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공격에서 이동국이 있었다면 수비에서는 최철순이 있었다. 2006년 전북에 입단한 뒤 상주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오직 전북에서만 뛴 전북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공교롭게도 최철순을 상주로 떠나보낸 시절 전북은 우승을 하지 못했다. 2014년 최철순이 제대하면서 복귀하자마자 전북은 다시 정상에 올랐다. 최철순이 전북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투지왕' 최철순이 없었다면 전북의 6회 우승 영광은 없었다는 점이다. 올 시즌도 24경기에 뛰며 전북 우승에 앞장섰다. 이동국과 최철순은 6회 우승으로 K리그 역대 선수 우승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1위는 7회 우승의 박남열이다. 그는 성남 2번의 3연패를 모두 경험했고, 2004년 수원 삼성으로 이적해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공동 2위는 성남에서 6개의 별을 단 신태용과 부산 아이파크·수원·성남에서 6번 우승을 경험한 샤샤다. 이동국과 최철순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중 한 팀에서 6회 우승을 경험한 이는 신태용·이동국·최철순이다. 그리고 6회 우승을 '같은 감독'과 함께 한 이는 이동국과 최철순뿐이다. 신태용은 박종환 감독과 3번 고 차경복 감독과 3번 우승을 달성했다. 감독과 선수가 함께 6회 우승을 달성한 것은 K리그 '전대미문'의 기록이다. 감독과 선수의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감독과 선수의 불화는 어느 한쪽의 신뢰가 무너지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몰락하는 팀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최 감독과 이동국, 최철순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의 굳건한 믿음이 6회 우승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전북의 6회 우승은 감독과 선수간 신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우승이다. 최 감독은 6회 우승에 대해 "감독이 한 것은 별로 없다"며 웃었다. 그리고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최 감독은 "부상자도 많이 나왔고 위험 요소가 많았던 어려운 시즌이었다. 특히 노장들이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며 이동국의 이름을 꺼냈다. 그는 "이동국이 노장으로서 후배들을 잘 리드해줬다. 희생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또 그 나이에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려줬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최철순에 대해서도 "김민재, 김진수 등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수비수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줬다. 수비에서 최철순이 좋은 역할을 해냈다"며 절대 신뢰를 드러냈다.진정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 그리고 최철순이 함께 한 발자취는 위대함 그 자체다. 울산=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8.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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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최강희 감독, 11월 이달의 감독 선정

전북 현대 최강희(55) 감독이 11월 K리그 '소니코리아 이달의 감독'에 선정됐다. 최강희 감독은 2005년부터 아홉 시즌 째 팀을 이끌고 있다. 올 시즌 24승 9무 5패로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차지하며 세 번째 별을 달았다. 전북은 지난 11월 8일 제주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후 11월 한 달 동안 5전 4승 1무의 성적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특히 9연승을 기록하며 울산과 성남의 팀 최다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최 감독은 울산과 포항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K리그 통산 207경기에 출전해 10골 22도움을 기록했고 86년 MVP를 비롯해 85, 86, 88, 91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수원(코치 및 트레이너, 1996~2001)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코치, 2002), 국가대표팀(코치, 2003~2004)을 거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2005년 전북현대의 감독으로 취임해 팀을 이끌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우리나라의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끌어냈다. 취임 이듬해인 2006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우승을 거두며 구단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이후 2009년과 2011년 K리그 우승컵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전북이 명문구단으로 그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최 감독은 '닥공'이라는 팀 컬러를 전북에 입히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봉동이장' '강희대제'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올 시즌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균형 잡힌 모습으로 8월 이후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완벽한 모습으로 2014년 K리그 클래식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편 2014년 신설된 '소니코리아 이달의 감독'은 연승, 승점, 승률 등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지를 정량적 데이터로 산출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평가회의에서 최종 선정한다.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22개 구단 감독 전체를 후보로 매월 1회 발표한다. '소니코리아 이달의 감독‘에게는 기념 트로피와 함께 글로벌기업 ’소니‘의 후원으로 디지털 카메라 ‘NEX-5T'가 수여되고, 연말 최우수감독상 선정 시에도 자료로 반영되었다.올해부터 함께 신설된 'ICE-WATCH 이달의 심판(11월)'에는 이규환 부심이 선정됐다. 이규환 심판은 11월 열린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총 5경기(11/02 상주-부산, 11/09 수원-서울, 11/16 성남-경남, 11/22 전남-상주, 11/30 제주-서울)에 투입되어 정확한 온-오프사이드 판정과 뛰어난 위치선정 및 움직임을 보였다. 이 심판은 2011년부터 K리그 전임심판으로 활동한 프로 4년차다. 벨기에 시계전문기업 'ICE-WATCH' 시계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ICE-WATCH 이달의 심판'은 2014 K리그 클래식 및 챌린지 경기를 뛰는 K리그 전임심판 46명(주심 22명, 부심 24명)을 대상으로 매월 1회 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회에서 선정해 발표한다. K리그 전임심판은 국내 등록 심판 중 최고의 실력을 갖춘 심판을 선발해 구성한다.윤태석 기자 sportic@joongang.co.kr 2014.12.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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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4강…최강희의 믿는 도끼 vs 김학범의 눈물

빚 지고는 못 산다.승부사들에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전북 현대 최강희(55), 성남FC 김학범(54) 감독 모두 '빚 지고는 못 사는' 승부사 기질을 지녔다.두 사령탑은 22일 '2014 하나은행 FA컵 4강전'에서 맞붙는다. 장소는 전북 홈인 전주월드컵경기장이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은 비교가 안 된다. 전북은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선두, 성남은 10위다. 전북은 리그 우승을 노리고 성남은 강등권 탈출이 목표다. 올 시즌 3번 싸워 전북이 3전 전승(1-0, 3-0, 1-0)했다. 앞으로 정규리그에서 만날 일도 없다. 전북은 상위그룹(1~6위), 성남은 하위그룹(7~12위)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FA컵 준결승은 지금까지 데이터가 무의미한 단판 승부다. 어떤 전문가도 섣불리 전북의 우세를 점치지 못한다. 최강희, 김학범 감독 모두 이번 경기를 꼭 이겨야 할 이유가 있다. ◇최강희의 믿는 도끼최강희 감독은 FA컵으로 우뚝 선 사람이다. 그는 2005년 여름, 전북 지휘봉을 잡았다. 그 때 전북은 지방의 그저 그런 팀이었다. 밤에 합숙소에 가보면 야식배달 오토바이가 오고가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자기관리란 마인드 자체가 없었다. 팀 내 선수들 간에 출신별로 계파가 갈려 있기도 했다. 최 감독은 그해 정규리그에서는 11위에 그쳤지만 토너먼트 싸움인 FA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FA컵 우승으로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낸 것이 지도자 인생에 터닝포인트였다. 2006년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최강희'란 이름을 널리 알렸다. FA컵은 지금의 '봉동이장' 강희대제' 최강희를 만들어 준 타이틀이다. 그러나 최 감독은 작년에 '믿었던' FA컵에 '발등'을 찍혔다. 작년 여름 약속대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 놓고 전북으로 돌아온 최 감독은 곧바로 FA컵 결승에 올랐다. 다들 전북이 유리하다고 예측했지만 결과는 승부차기 패배였다. 전북은 FA컵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규리그에서도 우승경쟁에서 멀어져 3위에 그쳤다. 1년 만에 다시 온 기회. 더구나 올 시즌 전북은 '더블'(정규리그-FA컵 2관왕)을 꿈꾸고 있다. 최 감독 머릿 속에 패배란 등식은 없다. ◇김학범의 눈물 2008년 11월27일.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냉철한 모습을 보였던 김학범 감독이 눈물을 훔쳤다. 10년하고도 2개월 동안 코치와 감독으로 숱한 영광을 함게 했던 성남일화를 떠나는 사퇴 기자회견이었다. 김 감독은 팀과 계약이 1년 남아 있었지만 물러났다. 성남은 직전 시즌인 2007년 정규리그를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8년 시즌에도 시즌 내내 리그 1·2위를 달리다가 막판 난조로 3위로 추락해 6강 플레이오프(PO)를 치르는 신세가 됐다. 성남이 3위로 떨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최종라운드 직전 전북과 홈경기 1-2 패배였다. 악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6강 PO에서 공교롭게 또 전북을 맞닥뜨렸다. 성남은 연장접전 끝에 1-2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 패배 직후 김 감독은 성남을 떠나 야인이 됐다. 당시 전북 사령탑이 최강희 감독이다. 김 감독은 지난 9월5일 '긴급소방수'로 성남 지휘봉을 다시 잡아 고향 팀으로 돌아왔다. 물론 성남은 예전의 화려한 기업구단이 아닌 가난한 시민구단이다. 하지만 FA컵 준결승 상대가 6년 전 김 감독에게 아픔을 안겼던 전북과 최강희 감독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김 감독은 이를 악물고 있다.윤태석 기자 sportic@joongang.co.kr일간스포츠가 만든 베팅긱은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안드로이드폰용 다운로드] [아이폰용 다운로드] 2014.10.2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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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2006년의 데자부를 꿈꾸다

궁지에 몰린 전북 현대가 '어게인(Again) 2006'을 외치고 있다.전북은 15일 가시와 레이솔(일본)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0-2로 졌다. 22일 가시와 홈에서 2차전을 벌이는 전북은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전북은 2차전에서 세 골 이상 넣고 점수차를 두 골 이상 벌려야 8강에 오를 수 있다. 만약 2-0으로 이기면 동률이 돼 연장전 후 승부차기를 한다. 파비오 전북 감독대행은 "전북은 무조건 1골은 넣을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점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했다.김상식마저 가시와전에서 코뼈 부상을 당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래도 전북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아시아 정상에 올랐던 2006년 이미 궁지에 몰렸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전북은 2006년 조별리그부터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전북은 다롄 스더(중국)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설상가상으로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이후 3골을 몰아치며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7개조에서 각 조 1위만 8강에 진출하고 지난 대회 우승팀인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가 8강에 자동 진출하는 시스템이었다.8강 상대 역시 중국의 상하이 선화였다. 전북은 1차전 원정경기에서 0-1로 패해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2차전 홈에서 4-2 대승을 거두며 또다시 승부를 뒤집었다. 중국 언론은 조별리그와 8강에서 중국팀을 상대로 연이어 역전 승부를 만들어낸 최강희 당시 전북 감독에게 '강희대제'라는 별명을 붙였다. 중국 청나라 황제의 이름을 빗대 최 감독의 업적을 치켜세웠다.4강전에서는 이천수를 앞세운 울산을 만났다. 전북은 이번엔 홈에서 먼저 2-3 패배를 당했다. 서로를 잘 아는 상대인데다 2차전이 원정 경기라 전북의 역전승은 더이상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전북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2차전 4-1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알 카라마(시리아)를 1·2차전 합계 3-2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전북은 현재 미드필더 김정우·정혁과 수비수 김상식이 부상으로 빠져 힘겹다. 에닝요도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전북은 2006년의 좋았던 기억을 되새기며 또다시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 2013.05.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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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봉동이장’ 소병주씨 “전북은 우리 도민의 자랑”

키워드 봉동이장 팬들이 붙여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의 별명이다. 전북의 클럽하우스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전북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끈 최 감독의 용병술 덕분에 시골의 작은 읍 봉동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강희대제’ ‘2대8 카리스마’ 등의 별명도 있지만 최 감독은 봉동이장이라는 별칭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4일 K-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봉동주민이 준비해준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어 완벽하게 봉동이장으로 변신했다. 최 감독은 '봉동이장' 세리머니에 대해 "손에 호미라도 들고 있어야 좀더 완벽했을텐데 아쉽다"며 웃었다. 올해 완주군에서는 최 감독을 명예 봉동이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일간스포츠가 최강희(52) 전북 감독의 별명으로 유명한 '봉동이장'을 직접 만났다.실제 봉동이장은 어떤 모습일까. 정확히 말하면 봉동이장이 아니라 봉동읍장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봉동읍장을 만나러 봉동읍사무소를 찾아갔다. 읍사무소 2층에 있는 읍장실에는 최 감독처럼 푸근하고 친근한 모습의 신사 한 분이 있었다. 소병주(51) 봉동읍장은 "최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전북 현대가 우승했다. 기분이 어떤가. "촌 동네에 불과한 봉동을 널리 알려줘 정말 고맙다. 전북 축구단은 봉동의 자랑일뿐만 아니라 전북도민의 자랑이다. 지금처럼 계속 잘 해서 주민들의 사기를 올려줬으면 좋겠다."-최강희 감독의 '봉동이장'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정말 잘 지은 별명인 것 같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인터뷰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봤다. 명문팀 감독님답지 않게 소박하게 말하는 모습이 와닿았다. 세련된 이미지보다는 딱 이장님 스타일이다."소 읍장은 아직까지 최 감독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 클럽하우스가 봉동에 있지만 선수단과의 교류가 활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TV와 뉴스를 통해 최 감독과 전북 현대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소 읍장은 "바쁘신 와중이지만 꼭 한번 만나뵙고 축하드리고 싶다"며 최 감독과의 만남을 희망했다.-봉동주민이 직접 밀짚모자와 장화를 준비해 최 감독의 세리머니를 도왔다고 하더라."아, 그런가. 잘 몰랐다. (때마침 탁자에 있는 전북도민일보에 나온 최 감독의 세리머니 사진을 보면서) 어느 분인지 몰라도 정말 센스가 뛰어나신 것 같다. 내년에 만약 우승을 한다면 나도 경기장에 찾아가 축하를 드리고 싶다.(웃음)"-이 곳 사람들은 전북 축구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연고팀이라 애정이 남다르지만 자주 경기장을 찾거나 하는 편은 아니다. 워낙 나이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렇다. 그러나 축구단과 농구단(전주 KCC)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봉동은 인구가 2만3282명이다. 다른 읍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현대자동차와 KCC가 입주해있는 완주산업단지가 있어 그렇다. 그러나 아직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내년에 축구단 클럽하우스가 완공된다."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클럽하우스와 훈련장을 제대로 짓기 위해 공사기간이 좀더 길어졌다고 들었다. 완공이 되면 봉동이 자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지역 주민들이 클럽하우스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본다."-클럽하우스가 있는 율소리 주민들은 불만도 있다던데."어디든 체육시설이 들어오면 장점도 있지만 피해를 보는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농민들 입장에서는 훈련 중 발생하는 소음과 야간 조명 때문에 불편함을 토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앞으로 축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사실 축구단과 교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클럽하우스가 있음에도 그동안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점은 반성해야겠다. 내년부터는 축구단과 좀더 활발히 교류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완주=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 2011.12.0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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